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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휴머노이드 로봇의 등장에 격하게 반발하는 노조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굴러오는 거대한 수레는 피할 수 없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부터 그렇다.
실제로 낯선 신기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핑계로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고 오히려 조화로운 공존의 길을 모색해서 함께 경쟁력과 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세다. 세기 러다이트 운동도 결국 잦아들 수밖에 없었다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AI)·로봇과 인간 근로자의 ‘일자리 경쟁’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은 분명하다. 정부가 맹렬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인공지능 3대 강국’과 ‘반도체 2대 강국’의 꿈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꿈이 밝고 화려할수록 그에 비례해서 어두운 그림자도 크고 짙어지는 법이다. ‘굴러오는 거대한 수레’를 섣불리 거부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철저한 준비와 대응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자칫하면 화려한 국정과제가 ‘철학 없는’ 허접한 기술 낙관주의로 전락하게 될 수도 있다.
● 자동화는 거부할 수 없는 대세
인공지능이 가져올 화려한 미래에 취해 있는 우리에게 ‘일자리 경쟁’의 차가운 현실을 일깨워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위력은 가공할 수준이다. 키 센티미터, 몸무게 킬로그램의 아틀라스는 도 회전하는 골절을 이용해서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최대 킬로그램의 부품을 거뜬하게 들어 올리고 섭씨 영하 도에서 영상 도까지의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스스로 배터리를 충전하는 능력도 갖췄다. 별도의 임금이나 노동권을 요구하지도 않고 폭염이나 한파도 걱정할 이유가 없다. 유지비 만원으로 1년 일 연속 가동이 가능하다.
그런 아틀라스의 등장이 기업에게 매력적인 것은 분명하다.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챙기도록 해주는 보배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가 아니더라도 로봇과 사무자동화(RPA)는 이미 우리 기업에게 익숙한 기술이다. 노동운동이 본격화한 년대부터 원시적인 산업용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에 적극적인 투자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미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의 영역은 상상을 넘어선다. 제조업에서는 조립·검사·용접·도장(塗裝) 등에서 고난도 작업이 빠르게 자동화되고 있고 물류·유통에서는 분류·포장·출고가 자동화의 핵심이다. 서비스업도 예외가 아니다. 데이터 입력이나 고객 응대 등의 단순 반복 업무를 대신하는 사무자동화(RPA)·챗봇·음성인식이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실제로 우리 기업의 자동화 수준은 깜짝 놀랄 수준이다. 년 이후 계속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년 근로자 1만 명당 산업용 로봇 수가 대에 이른다. 싱가포르(대)·독일(대)·일본(대)·중국(대)·미국(대)을 크게 앞선 상황이다.
결국 자동화를 핑계로 산업 현장에 깊숙하게 파고든 로봇과의 일자리 경쟁은 해묵은 일이다. 현장의 근로자 규모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 그 결과다. 대표적인 서비스업인 은행의 사정도 심각하다. 올해 상반기까지 5대 시중은행에서 1만명의 콜센터 인력이 일자리를 잃었다.
신규 채용이 크게 줄면서 노조의 정상적인 운영까지 어려워지기도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사정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 2년 후에나 미국의 공장에 투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문뿐인 아틀라스에 대해서 노조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 새로운 일자리는 정부·기업의 몫
로봇에게 일자리를 내줘야 하는 근로자의 입장이 몹시 난처하다. 아틀라스와의 조화로운 ‘공존의 길’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고 ‘창업’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일자리를 빼앗긴 근로자의 암울한 현실을 고려하면 인공지능과의 조화로운 공존은 함부로 들먹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연 ‘창업’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인공지능·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근로자에게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에도 미치지 못하는 ‘창업’은 사실상 ‘자영업’을 뜻한다. 코로나 이후에 자영업이 참혹하게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가 지원금만 쏟아부으면 누구나 ‘창업’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일자리를 빼앗겨 절망하고 있는 근로자에게 무분별한 희망 고문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산업 현장에 새로 등장하는 기술이 노동시장을 위협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은 경험이다. 오히려 산업화 기술의 등장으로 농경·목축의 전통 사회가 막을 내린 산업혁명 이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익숙한 풍경이다.
우리가 노동시장을 위협하는 신기술의 거센 물결을 함부로 거부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세기 동안 전기화·자동화·정보화가 이룬 성과는 대단했다. 인구는 5배가 늘었고 평균수명은 배가 길어졌고 총생산은 배가 증가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상 최고의 풍요·건강·안전·민주화도 가능해진 것도 역사적 진실이다.
결국 화려한 AI·로봇 시대를 꿈꾸는 우리가 반드시 암울한 ‘노동의 종말’을 걱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AI가 단순히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량을 증폭시키는 도구일 수도 있다.
실제로 AI 석학으로 알려진 앤드루 응 스탠퍼드대 교수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주장이 그렇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주장도 똑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긍정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일은 명백하게 정부와 기업의 몫이다.
물론 신기술에 대한 비겁한 패배주의에서는 과감하게 탈출해야 한다. 새로운 노동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인간 근로자는 로봇이 흉내 낼 수 없는 감성과 공감 능력, 종합적 판단과 책임감으로 돌발 상황을 통제하고 차별화·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진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모든 근로자가 그런 진화에 필요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를 빼앗긴 근로자에게 그런 역량을 섣불리 요구해서는 안 된다.
인공지능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무겁다. 근로자를 대체하는 AI·로봇의 높은 생산성으로 ‘떼돈’을 버는 일만 챙기겠다는 탐욕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로봇에 일자리를 빼앗긴 ‘인간’을 배려하기 위해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내재적 특성인 합리·감성·공감·창조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그런 투자와 노력이 근로자가 아니라 기업 자신을 위한 일이 될 것이라는 확실한 인식이 필요하다.
국정과제를 핑계로 노동시장을 뒤흔들어놓은 정부의 책임도 무겁다. 이제 막 태어나고 있는 AI를 섣부르게 관리·규제하겠다는 어설픈 시도는 확실하게 포기해야 한다. 나랏돈을 풀어서 허접한 일자리 2만 개를 만들고 국민에게 창업을 핑계로 예산을 퍼주는 일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근로자에게 좋은 일자리는 오로지 민간에서만 만들 수 있다는 명백한 역사적 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민간 역량 중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정부의 국정과제 탓에 일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인간 근로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필요한 상황이다.
※필자 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 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여 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질병의 연금술》《지금 과학》을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